[오마이뉴스 배승룡 기자] 여름의 초입에 들어선 요즘 날씨는 사람들로 하여금 쉬 지치게 하고 때로는 짜증을 
유발하게 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감동을 받는 일도 있을 것이다. 감동의 크기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그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감동 자체가 중요할 터.

필자는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남들보다 뒤늦게 졸업한 후 지금껏 
10여년간 사회복지 기관에서 종사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이다. 사회복지 분야에 있다 보면 일반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는데, 그건 
감동을 먹고 산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논리대로라면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보잘 것 없는 직업군이지만 일반 
직장인들이 느끼지 못하는 그 무언가에 기뻐하며 묵묵히 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필자처럼 10여년의 시간 동안 일을 하게 
되면 그 감동이나 기쁨도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다. 그러한 나에게 얼마 전 아주 작지만 감동적인 일이 생겼다. 혼자 알고 있기에는 입이 간지러워 
글재주라고는 하나 없지만 용기를 내 기사를 올려본다.

사건의 요지는 이렇다.

필자가 지난해부터 근무하고 있는 치매어른 
주간보호시설에는 여러 종류의 자원봉사원들과 단체들이 방문을 하여 어르신들과 놀아주기도 하고 산책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런 가운데 
올 초부터 나름대로 생각했던 프로그램 중 하나가 치매어르신들에게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을 선물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여러 출판사에 
메일도 보냈으나, 경제불황 때문인지 글 솜씨가 좋지 않아서인지 매번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던 차에 같은 사회복지계에 몸 담고 있는 
대학 후배가 대표로 있는 아이프랜드복지재단(대표:장용석)에서 운영이 어려운 공부방에 도서를 전달해주는 좋은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어 
선배의 권위로 제안을 해보았다. "아이들에게만 주지 말고 치매어르신들에게도 책을 전달해주면 어떻게 느냐"고.

선배의 권유때문인지 
아니면 프로그램 기획 능력이 뛰어난 후배의 판단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애초 나의 생각보다 더 세련되게 
포장하여 치매어르신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청소년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뿐만 아니라, 어른들께 읽어준 책은 센터 어르신들에게 기증한다고 
했다. 참 좋은 기회다 싶어 적극적으로 진행하였다.

지난 11일 오전 11시경 강남 개포중학교 한 반 인원 전체가 센터를 방문하는 
것으로 프로그램은 준비 되었다. 36명의 대단한 인원을 우리 기관처럼 작은 기관에서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까 우려도 했지만,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사회복지사 특유의 책임감으로 서로간의 일정을 체크하며 그날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더 차에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행사를 이틀인가 앞두고 갑자기 복지재단에 있는 후배로부터 급한 연락이 왔다. 개포중학교 사정으로 이번 행사가 갑자기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그 순간 '아, 난 또 어르신들에게 거짓말쟁이가 되었구나'하는 안타까움과(평상시에도 어르신들을 달래기 위해 나를 포함한 
직원들은 늘 거짓말쟁이 피노키오가 되어 있었다) 아쉬움이 교차하면서 다음을 기약하자고 애써 위안했다.

그런데 그러한 아쉬움을 
기쁨과 환희로 바꾸어주는 일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직원들과 어르신들에게 백배사죄를 하며 다 나의 부덕이라고 자책했던 지난 월요일, 
출판사 후배는 치매어르신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감출 길 없었는지 50여권에 달하는 동화책을 센터로 배달을 하였다. 정성껏 준비한 흔적이 그대로 
드러났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어르신들도 책을 받아보고 선한 웃음을 지었다. 직원들의 마음도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난 
14일,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한 그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점심시간이 다되어가는데 늘 그 시간이면 오시던 우편배달부 아저씨 대신 택배회사 
아저씨가 한 뭉치 박스를 건네시는 것이다. 뭘까 하고 겉을 보니 과자라고만 써 있고 어디서 많이 본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개포중학교'. 
노인주간보호센터 앞으로 수진자가 되어 있어 급하게 뜯어보았다.

어렸을 적 내가 좋아하던 또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양갱이 한가득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의 마음 씀씀이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직원들에게 전달한 뒤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하였다. 그런데 잠시 후 
간호사가 나에게 급히 달려왔다.

무슨 일이 터졌나 하고 나와 같이 식사하던 직원들이 궁금해 하는 찰나,

"국장님, 이것 
보세요. 아이들이 손수 자필로 사과 편지를 썼어요." 
"네?"

난 내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바로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 
박스를 다시 받아 안을 들여보았다. 성미 급한 내가 양갱이 들어 있는 것만 보고 그 밑에 있던 편지들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박스 안에는 
아이들의 손으로 직접 쓴 듯한 편지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한결같이 어르신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의 
내용들이었다. 그 편지를 받아보는 우리 모두는 한동안 작지만 정성어린, 또 우리에게 희망이 무엇이고 기쁨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 강남 
개포중학교 학생들과 선생님에 대한 칭찬으로 입을 모았다.

아,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누구나 그러한 생각을 할 수 있을지언정 
실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아 아름다운 학생들과 선생님이다. 것들. 너희들 덕분에 이 땅에 어려운 일이 많이 있고 실망의 깊이가 깊어도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것이라고 감히 이야기해본다.

정말 소중한 것을 깨닫게 해준 강남 개포중학교 3학년 9반 박현정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아직도 내 책상에는 그 소중한 편지들이 가득 놓여 있다.

/배승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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